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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30~경주 쌍상총 경주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사적 제39호로 지정된 노서동고분군에 속한 무덤이다. 1953년도에 국립중앙박물관 발굴단에 의해 조사되었지만 그 당시 이미 도굴을 당해 무덤 부장품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무덤 내부형태는 굴식돌방무덤으로 2개의 주검받침대가 발견되어 쌍상총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노서동고분군 대로 앞엔 요즘 핫플레이스가 된 황남동 황리단길이 위치해 있다.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28~신라 제7대 일성이사금 일성이사금은 유리이사금(신라 제3대 왕)의 맏아들이며 왕비는 박씨로 지소례왕의 딸이다. 권 제1 신라본기 제1 5년(138년) 봄 2월, 금성(신라의 첫 궁궐)에 정사당(국가 중대사를 회의하는 장소)을 설치하였다. 가을 7월, 알천(지금의 북천) 서쪽에서 열병식을 크게 거행 하였다. 6년(139년)에는 말갈의 침입이 있었고, 7년(140년)에는 말갈의 침입을 방비하였다. 11년(144) 봄 2월, 영을 내려 "농사는 정치의 근본이요 밥먹기는 오로지 백성이 하늘로 여기는 것이니 여러 주군에 제방을 수리하고 농토를 널리 개척하라"하였고 또 "민간에서 금은주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권 제1 신라본기 제1 일성왕 때 말갈이 침입이 있었고, 압독국(지금의 경북 경산에 위치한 소국)의 반란이 있..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25~경주 대릉원 코로나19의 여파로 대한민국은 적극적 거리두기를 온 국민이 실천하고 있다. 신라 천년고도 경주도 도시 기능이 잠시 멈추어 있다. 이 사태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지나갈 것이다. 곧 관광객이 넘쳐나는 경주를 기다리며...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19~신라 제41대 헌덕왕릉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헌덕왕(809~826) 헌덕왕이 즉위하니 휘는 영승이요, 소성왕의 동복 아우이다. ...중략... 18년(826) 겨울 10월, 왕이 죽었다. 시호를 헌덕이라 하고 천림사 북쪽에 장사지냈다. 14년(822) 3월, 웅천주도독 헌창이 자기 아버지 주원이 임금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역하였다. 그는 국호를 장안이라 정하고 연호를 경운 원년이라 하였다. ...중략... 모든 군사가 함께 웅진에 당도하여 적과 크게 싸워 베고 사로잡은 수효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헌창은 겨우 몸을 빠져 성안으로 들어가 굳게 지키니, 모든 군사가 포위 공격하여 10일이 지나 성이 점차 함락되려 하자 헌창은 모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자살했다.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18~경주 노서동고분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16~경주 노서동고분 더보기
경주 쪽샘 44호에서 1,500여 년 전 토기에 새긴 신라 행렬도 발견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2014년부터 진행 중인 쪽샘 44호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 발굴조사에서 신라 행렬도가 새겨진 토기와 말 문양이 새겨진 토기, 44호 제사와 관련된 유물 110여점을 확인하였다. * 쪽샘: 샘물이 맑아 쪽빛을 띤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 * 발굴조사 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황오동 349-3 행렬도가 새겨진 토기는 44호 호석(護石) 북쪽에서 파손된 상태로 출토되었다. 전체 높이 약 40cm의 긴목항아리(장경호, 長頸壺)로 추정되며, 그릇 곳곳(경부頸部, 견부肩部, 동체부胴體部)에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문양은 크게 4단으로 구성되었는데, ▲ 1단과 2단, 4단에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반복되어 있고 ▲ 3단에는 다양한 인물(기마·무용·수렵)과 동물(사슴·멧..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15~경주 황남동 고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