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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34~경주 재매정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의 옛 집터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조선 고종 9년(1872) 경주부윤 이만운이 김유신의 거처임을 알리기 위해 세운 김유신유허비가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전성기에 화려한 대저택으로 알려진 35채의 금입택 중 하나인 재매정댁에 있던 우물이 비각 옆에 지금도 남아있다.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06~경주 명활산성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05~경주 천관사지 더보기
원원사지 동·서 3층석탑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원원사지(사적 제46호)에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3층석탑이다. 원원사가 세워진 시기에 대해서는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권제5 신주 제6 명랑신인조에 그 내용이 전해져 오고 있다. 또 신라 서울 동남쪽 20여 리 되는 곳에 원원사(遠源寺)가 있는데, 세상에 이런 말이 전한다. "안혜 등의 네 대덕(안혜, 낭융, 광학, 대연)이 김유신(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장군), 김의원(신라 중대의 귀족), 김술종(신라의 진골출신으로 진덕여왕 때 삭주도독을 지냄,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화랑 죽지랑의 아버지) 등과 함께 발원하여 세운 절이다. 네 대덕의 유골은 모두 절의 동쪽 봉우리에 묻혀 있기 때문에 이름을 사령산 조사암이라고 한다." .. 더보기
태종무열왕, 백제 사비성 함락, 일통삼한으로 가는 길을 열다.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의 능이다.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원형봉토분으로 무덤 주위에는 무덤의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둘레돌을 돌렸다. 무덤 앞에 있는 귀부(거북모양의 비석 받침돌)위에 얹혀 있는 이수(비석의 맨 윗부분을 장식하는 머릿돌로 보통 용 문양을 새겨둔다)의 앞면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고 새겨진 글귀로 인해 신라시대 왕들의 무덤 중 그 주인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무덤이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의 이름은 춘추(春秋)로 신라 제25대 진지왕(재위 576~579)의 아들인 이찬(신라 17관등 중 두번째, 이척찬이라고도 함) 용춘(또는 용수)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신라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 더보기
김인문, 대당외교로 신라 일통삼한을 이끌다.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김인문의 무덤으로 흙을 둥글게 쌓아올린 원형봉토분이며 특별한 장식이 없다. 무덤 앞의 건물에는 김인문의 업적을 새겼던 비석의 받침돌로 짐작되는 귀부(거북모양의 비석 받침돌)가 있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둘째아들로 자(字: 주로 남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 붙이는 일종의 이름)는 인수, 어머니는 문명태후(김유신의 둘째 여동생인 문희)이다.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의 친동생으로 어려서부터 일찍 학문을 배워서 식견이 넓었으며, 유학을 비롯하여 장자, 노자, 불교와 관련된 모든 책들을 읽었고, 특히 글을 잘 썼는데 아버지 태종무열왕의 비문을 직접 썼다고 한다. 또한 향악(삼국시대부터 궁중에서 전통음악의 한 갈래로 당나라에서 수입된 음악을 당악이라 하였고, 우리의 고유한 전통음악.. 더보기
법흥왕, 일통삼한으로 가는 기틀을 마련하다. 경상북도 경주시 효현동에 있는 신라 제23대 법흥왕의 능이라고 전해오는 무덤이다. 경주의 서악이라 불리는 선도산 서쪽 기슭에서 뻗은 낮은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무덤의 내부구조는 알 수 없는데 겉모양은 흙을 둥글게 쌓아올린 원형봉토분이다. 삼국시대 신라 왕릉으로는 비교적 작은 편에 속한다. 무덤의 아래쪽에는 냇돌로 쌓은 둘레돌(무덤의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역할)이 드문드문 들어나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법흥왕은 재위 27년에 죽으니 애공사 북쪽 봉우리에 장사지냈다고 하였고,『삼국유사』에서도 왕의 능은 애공사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현재 이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라 말기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3층석탑이 있는데 애공사지탑(효현리 3층석탑)이라 부르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 더보기
선덕여왕, 세 가지 일을 미리 알다.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낭산 정상에 있는 선덕여왕의 무덤이다. 외부 모습은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으로 둘레돌(무덤의 가장자리 기슭에 돌아가면서 늘어놓은 돌로 무덤의 흙이 무너져 내리 것을 막는 역할을 함)을 쌓고 다시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무덤이다. 선덕여왕은 신라 제27대 왕(632∼647)으로 성은 김씨, 이름은 덕만이다. 진평왕의 큰 딸로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다.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 : 성스러운 여자 황제)”란 호를 올렸다. 신라에서 여자인 선덕여왕이 처음으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성골’이라는 특수한 왕족 신분 때문이었다. 신라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 사적 182호 『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이 미리 알아서 맞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