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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

낭산(신유림), 신라왕실의 성역 경주시 보문동과 구황동, 배반동에 걸쳐 있으며 사적 제163호로 지정되어 있다. 낭산은 동서의 폭이 좁고,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산이다. 이곳은 옛날 신라인들에게 신유림(神遊林)이라 하여 신령스러운 산으로 높이 받들어 우러름을 받았던 곳이다. 신라시대에는 3사(三祠 : 나라에서 지내는 세 가지 큰 제사로 대사, 중사, 소사가 있다) 가운데 대사(大祠)를 받들던 중악으로, 서라벌의 진산(鎭山 : 도읍지나 각 고을에서 그곳을 보호해 주는 산으로 정하여 제사하던 산)이었다. 높이 115,102,100m에 달하는 3개의 봉우리를 따라 그 아래 쪽으로 매우 중요한 문화재(유물, 유적)들이 많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진평왕릉, 선덕왕릉, 그리고 문무대왕의 화장터로 알려진 능지탑 등의 신라왕들의 무덤과 사.. 더보기
낭산, 도리천 가는 길_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최선주)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성배), (재)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과 함께 6월 15일(수)부터 9월 12일(월)까지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낭산, 도리천 가는 길」 특별전을 공동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신라인들이 각별하게 여긴 경주 ‘낭산’에 대해 소개하고나아가 낭산에 분포한 다양한 문화유산을 알리며, 이것들이 가지는 의미를종합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를 위해 이번 전시는 ▲‘낭산으로의초대’(프롤로그) ▲ Ⅰ부‘신들이 노닐던 세계’ ▲ Ⅱ부 ‘왕들이 잠든 세상’ ▲ Ⅲ부 ‘소망과 포용의 공간’ ▲‘전시를 마치며’(에필로그) 등 5개의 주제로 구성했다. ▲‘낭산으로의 초대’(프롤로그)는 경주 분지에서 낭산의 위치와 낭산에 분포한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공간.. 더보기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불교사원실> 신설 별처럼 무수히 많았던 신라의 사찰과 탑을 만나는 공간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최선주)은 오는 11월 24일(수) 『삼국유사』에 전하는 “절이 별처럼 많고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었다(寺寺星張 塔塔雁行)”는 구절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전시실을 선보인다. ‘불교사원실’이라고 불릴 새 전시실은 신라미술관 2층에 있던 기존 황룡사실을 공간과 내용 면에서 크게 확장하여 신라의 최초 사찰인 흥륜사부터 9~10세기 사리기까지 아우르는 풍성한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지진에 대비한 면진 진열장 설치, 전면 저반사 유리 도입으로 문화재 안전과 전시 관람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신라미술관 중층의 환경을 개선하고 2층 계단 홀 공간을 전시의 일부로 편입하여 관람객들이 중층을 거쳐 2층 불교사원실로 보.. 더보기
‘신라의 호국사찰, 경주 망덕사’-국립경주박물관 특집진열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특집진열 ‘신라의 호국사찰, 경주 망덕사’를 5월 5일부터 7월 4일까지 마련합니다. 이 특집진열은 경주 망덕사터에서 출토된 문화재를 처음 전시하는 자리입니다. 1. 용얼굴무늬 사래기와, 망덕사터 출토, 통일신라, 길이 15.5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2. 용얼굴무늬 수막새, 망덕사터 출토, 통일신라, 지름 12.2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경주시 배반동에 그 터가 남아 있는 망덕사(望德寺)는 679년(문무왕 19년)에 세운 신라의 호국 사찰입니다.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674년 신라에 패한 당나라는 이듬해 50만 군사를 동원해 신라를 다시 공격했습니다. 신라는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지어 불심으로 당.. 더보기
망덕사, 나.당전쟁 때 당나라를 속이기 위해 세운 절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낭산 남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사 맞은편에 있는 절터이다. 지금 이 곳에는 금당, 강당, 동서목탑, 중문, 회랑 등의 건물터가 남아있고 절의 서쪽 편에는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나당전쟁 때 부처의 힘으로 당나라를 물리치고자 사천왕사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문이 당나라에 전해지자 예부시랑 악붕귀를 사신으로 보내어 이를 확인하려 하였다. 신라에서는 나라를 보호하는 사천왕사를 보여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여 사천왕사 남쪽에 따로 새 절을 지어 보여 주었다. 당나라 사신이 절 앞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것은 사천왕사가 아니고, 망덕요산(亡德遙山)의 절이군요” 하고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신라 사람들이 황금 1,000냥을 주었더니 당나라로 돌.. 더보기
사천왕사, 명랑스님이 문두루비법으로 당나라를 물리치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에 있는 절터로 선덕여왕의 무덤이 있는 낭산 남쪽 아래에 있다. 사천왕사(사적 8호)는 2006년 4월 부터 2011년 현재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절터에는 금당을 중심으로 동,서탑 및 좌우경루의 건물터를 비롯하여 머리가 잘려 나간 귀부 2기와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그리고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천왕 전(벽돌)은 신라에서 조각으로 유명한 양지스님의 작품이라고 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절들은 모두 금당(부처님을 모신 건물) 앞에 3층 또는 5층탑 하나만을 세우는 일탑가람 형식이었으나, 통일 이후에는 금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탑을 세우는 쌍탑가람 형식으로 바뀌었는데, 이 사천왕사가 쌍탑가람 형식의 최초의 절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 더보기
선덕여왕, 세 가지 일을 미리 알다.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낭산 정상에 있는 선덕여왕의 무덤이다. 외부 모습은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으로 둘레돌(무덤의 가장자리 기슭에 돌아가면서 늘어놓은 돌로 무덤의 흙이 무너져 내리 것을 막는 역할을 함)을 쌓고 다시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무덤이다. 선덕여왕은 신라 제27대 왕(632∼647)으로 성은 김씨, 이름은 덕만이다. 진평왕의 큰 딸로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다.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 : 성스러운 여자 황제)”란 호를 올렸다. 신라에서 여자인 선덕여왕이 처음으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성골’이라는 특수한 왕족 신분 때문이었다. 신라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 사적 182호 『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이 미리 알아서 맞춘.. 더보기
망덕사지 당간지주 경주시 배반동 낭산 남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사 맞은편에 있는 절터이다. 망덕사는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 제31대 신문왕 5년(685)에 세워진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곳에는 금당, 강당, 동서목탑, 중문, 회랑 등의 건물터가 남아있고 절터의 서쪽 숲속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망덕사가 세워진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당간지주는 높이가 2.44m로 특별한 장식이 조각되어 있지 않다. 보통의 당간지주에는 깃발을 달아두는 깃대(당간이라고 함)가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 두기 위해 세 곳 또는 두 곳의 구멍이 남아 있는데, 이 당간지주의 몸통에는 아무 구멍이 없고 맨 위쪽 끝에 네모진 홈을 파서 당간을 고정한 것으로 보인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