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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33~경주 삼랑사지 당간지주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랑사는 신라 제26대 진평왕 19년(597)에 건립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제31대 신문왕에 의해 국사가 된 경흥스님이 문수보살을 만난 이야기가 삼랑사를 배경으로 실려 있다. 더보기
국립경주박물관 어린이박물관 특별전‘신비한 피리, 만파식적’ 개최 역사도 배우고! 상상력도 키우고! 국립경주박물관 어린이박물관 특별전‘신비한 피리, 만파식적’ 개최 □ 전시 ㅇ 기간 : 2020. 5. 18.(월) ~ 10. 4.(일) ㅇ 장소 : 국립경주박물관 어린이박물관 특별전시실 □ 갤러리 토크 ㅇ 기간 : 2020. 5. 25.(월) ~ 10. 2.(금) 매주 월~금요일 14:00 ㅇ 장소 : 국립경주박물관 어린이박물관 특별전시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민병찬)은 5월 18일부터 10월 4일까지 어린이박물관 특별전 ‘신비한 피리, 만파식적’을 개최한다. ‘신비한 피리, 만파식적’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만파식적’설화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입체적으로 표현한 전시이다. 어린이들은 만파식적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를 통해 자연스럽게 신라의 역.. 더보기
신라 천년의 궁성, 마지막 흔적을 엿보다 -경주 월성 본격 발굴조사로 전환-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심영섭)는 지난해 12월 12일 고유제를 시작으로 조사한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慶州 月城, 이하 월성)’ 중앙지역(57,000㎡)의 시굴조사 성과를 공개한다. 이번 시굴조사는 지하 매장구조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고자 실시하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건물지와 담장의 흔적들은 유적 내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국 시대에서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친 토기와 기와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경주 월성 조사는 1914년 일제가 남벽 부근을 처음 파헤친 지 100년 만에 우리 손으로 실시한 최초의 내부조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조사지역에서는 기단, 초석, 적심 등 건물지 6동과 담장 12기 등이 확인되었으며, .. 더보기
황복사, 신라왕실의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던 곳 황복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낭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절터로 3층 석탑과 2기의 귀부(비석을 세워 두는 거북모양의 받침돌)가 남아있고 금당터로 여겨지는 곳에 12지신상(열 두해 띠를 상징하는 동물신상)조각이 묻혀 있다. 절을 세운 사람과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의상(625~702)대사가 머리를 깎고 출가한 절이라는 기록으로 볼 때 신라 제27대 선덕여왕(632~647) 이전에 이미 절이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황복(皇福)”이라는 절 이름을 통해 신라왕실의 복을 빌던 절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943년 일본인들이 탑을 해체, 수리하면서 2층 몸돌 안에서 금동 사리함과 금동 불상 2구(국보 79호인 금제여래좌상과 국보 80호인 금제여래입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더보기
망덕사지 당간지주 경주시 배반동 낭산 남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사 맞은편에 있는 절터이다. 망덕사는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 제31대 신문왕 5년(685)에 세워진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곳에는 금당, 강당, 동서목탑, 중문, 회랑 등의 건물터가 남아있고 절터의 서쪽 숲속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망덕사가 세워진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당간지주는 높이가 2.44m로 특별한 장식이 조각되어 있지 않다. 보통의 당간지주에는 깃발을 달아두는 깃대(당간이라고 함)가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 두기 위해 세 곳 또는 두 곳의 구멍이 남아 있는데, 이 당간지주의 몸통에는 아무 구멍이 없고 맨 위쪽 끝에 네모진 홈을 파서 당간을 고정한 것으로 보인다. 더보기
만파식적과 옥피리_국립경주박물관 특별진열 국립경주박물관은 7월 19일(화)부터 9월 18일(일)까지 소장 옥피리 두 점을 선보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두 점의 옥피리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5년 8월에 국립박물관에 입수된 것으로 조선시대 문인들의 여러 문집에서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옥피리를 신라 신문왕대의 대나무피리(만파식적)와 같이 적을 물러나게 하고 병을 치유하는 신이한 기물(神物)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고대의 ‘만파식적’에 대한 기원과 소망을 옥피리가 고스란히 이어 받았던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만파식적’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 문화재에 표현된 천인이 연주하고 있는 피리를 참고하여 그 모양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파식적’은 아니지만 천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