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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유산답사

보문사, 보문동 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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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로 일제 강점기 때 이곳에서 보문사(普門寺)”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보문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절이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제48대 경문왕(861~875) 11년(871)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은 모두 논으로 바뀐 이 곳 절터에는 금당(절의 본 건물로 부처님을 모셔둔 곳), 동서목탑 등의 건물터와 석조(큰 돌을 파서 물을 부어 쓰도록 만든 기구), 당간지주 2기와 초석(건물의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 석등(돌로 만든 등) 조각 등이 남아 있다.

경주보문리당간지주(慶州普門里幢竿支柱) ( 보물 제123호 )

보문사터 북쪽에 세워져 있는 이 당간지주의 양 기둥 가운데 북쪽의 기둥은 윗부분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당간을 고정하기 위해 3개의 구멍이 나 있는 남쪽 기둥은 구멍이 완전히 뚫려 있는데 북쪽 기둥의 구멍은 반쯤 뚫려 있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별한 장식이 없는 매우 소박한 모습의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경주보문리석조(慶州普門里石槽) (보물 제64호)

보문사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절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을 받아두기 위해 만든 돌물통을 석조라 한다. 지금도 절에서는 이와 비슷한 것들을 사용하고 있다.

경주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慶州普門洞蓮華文幢竿支柱) ( 보물 제910호)

기도나 법회 등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보문사 절터의 북쪽 편, 진평왕릉 앞에 있는 당간지주로 위쪽 바깥면의 네모난 틀 안에 8장의 연꽃잎이 새겨져 있는 특이한 모습을 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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