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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유산답사

창림사,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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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國王慶膺造無垢淨塔願記)

-국왕 경응(신라 제46대 문성왕의 이름)이 무구정탑을 만들고 바램을 기록한 글-

한림랑(신라시대의 관직으로 왕명을 문서로 작성하고 왕의 자문(의견)에 응하던 한림대의 우두머리, 이 관직에는 문장과 학문에 능한 사람들이 임명됨)으로서 새로이 추성군(지금의 전남 담양군) 태수(통일신라시대 군 단위에 파견된 지방관, 지금의 군수)를 제수(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리던 일) 받은 김입지가 국왕의 명을 받아 지음.

신라 제46대 문성왕(재위 839~857) 17년(855)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무구정탑기 금동판(사진출처 : 경향신문)
추사 김정희의 모사본(사진출처 : 경향신문)

듣건데 경전에서 말하기를 공덕(착한 일을 하여 쌓은 업적과 어진 덕)을 짓는 데에는 만 가지의 방법이 있지만, 만물에 무한한 이로움을 주는 것은 탑을 짓는 것 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생각건대 국왕께서는 여러 겁(, 무한히 긴 시간) 동안 선행을 행하셔서 지위가 인간세계와 천상세계에서 으뜸이 되셨습니다. 이제 또한 생명이 있는 존재가 고해(苦海, 괴로운 인간세계)에 떠다니면서 육도(六途,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반복하여 계속 태어나는 6가지 세계)에 순환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장차 그들을 구원할 길을 만들어 부처의 정토로 이끌고자 하시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무구정탑(無垢淨塔, 불교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의하여 만든 탑)을 건립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이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모든 중생을 구제할 것을 서원(소원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고자 맹세하는 일)하시고서 전국의 장인 중에 뛰어난 사람을 뽑고, 여러 산의 좋은 돌을 골라 캐어서 여러 층의 탑을 만들고 사리를 그 안에 넣었습니다. 공손히 바라건데 이 공덕이 멀리는 하늘이 끝나는 저편 너머까지, 위로는 높고 높은 곳 너머까지 미쳐서 저 꿈틀거리는 모든 영혼들에게까지 이익이 되고자 합니다. 또한 국왕께서는 영원히 인간세계와 천상세계의 주인이 되시고, 업보가 다하여 돌아가시는 날을 당하셔서는 곡식을 나누어 보시한 이름이 가장 높은 자리에 들기를 원합니다.

당나라 대중 9(855), 을해년 4월 윤달 일에 세움.

왕명을 받은 수조탑사(修造塔使, 총책임자 임시직)(국왕의) 종제(친척)이며 사지(소사라고도 하는데 신라 17관등 중 열 세 번째) 웅주(충청남도 공주시) 기량현(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령 김예(신라 제48대 경문왕 때 이찬(신라 17관등 중 두 번째)이었으나 반역을 꾀하다 사형을 받음)

-이하 생략-

-해설문 출처 : 경주의 문화유산, 답사자료 1집, 이근직, 경주박물관회, 1998
-1100년 전 창림사 탑이 세워진 내력이 담긴 금동원판이 최근에 발견됨. 2월 28일자 경향신문에 상세한 기사내용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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