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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

남간사지, 일념스님이 이차돈의 무덤에 예불하는 결사문을 지은 곳 나정, 양산재를 지나 남간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남산기슭의 논 가운데 당간지주가 서 있다. 최근에 논을 없애고 주변을 정리하였다. 남간사는 남간마을에 있었던 절터로 주변에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8각의 대좌와 석정(신라시대의 우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3호) 등이 있고 마을 안 여러 집들에서 사용하고 있는 초석(목조건물의 기둥으로부터 전달되는 건물의 무게를 받치는 기둥돌)과 축대(집터나 건물터의 땅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삼국유사』권3 「흥법」제3 "원종흥법 염촉멸신(원종이 불법을 일으키고 염촉이 순교하다)" 편에 아래와 같이 남간사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원화(806~820) 연간에 남간사 중 일념이「염촉의 향분(무덤)에 예불하는 결사문」을 지었는데… 일념 스님이 지은 이 결사문..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33~경주 삼랑사지 당간지주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랑사는 신라 제26대 진평왕 19년(597)에 건립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제31대 신문왕에 의해 국사가 된 경흥스님이 문수보살을 만난 이야기가 삼랑사를 배경으로 실려 있다.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26~경주 보문동사지 당간지주 기도나 법회 등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24~경주 망덕사지 삼국유사에 의하면 나당전쟁 당시 신라는 부처님의 힘으로 당나라를 물리치고자 낭산자락에 사천왕사를 짓고 있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당나라는 사신을 파견하여 그 진위를 확인하고자 하였는데, 신라는 이러한 사실을 감추고자 망덕사를 지어 보여주었다.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13~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07~경주 남간사지 당간지주 더보기
‘신라의 호국사찰, 경주 망덕사’-국립경주박물관 특집진열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특집진열 ‘신라의 호국사찰, 경주 망덕사’를 5월 5일부터 7월 4일까지 마련합니다. 이 특집진열은 경주 망덕사터에서 출토된 문화재를 처음 전시하는 자리입니다. 1. 용얼굴무늬 사래기와, 망덕사터 출토, 통일신라, 길이 15.5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2. 용얼굴무늬 수막새, 망덕사터 출토, 통일신라, 지름 12.2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경주시 배반동에 그 터가 남아 있는 망덕사(望德寺)는 679년(문무왕 19년)에 세운 신라의 호국 사찰입니다.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674년 신라에 패한 당나라는 이듬해 50만 군사를 동원해 신라를 다시 공격했습니다. 신라는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지어 불심으로 당.. 더보기
망덕사, 나.당전쟁 때 당나라를 속이기 위해 세운 절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낭산 남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사 맞은편에 있는 절터이다. 지금 이 곳에는 금당, 강당, 동서목탑, 중문, 회랑 등의 건물터가 남아있고 절의 서쪽 편에는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나당전쟁 때 부처의 힘으로 당나라를 물리치고자 사천왕사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문이 당나라에 전해지자 예부시랑 악붕귀를 사신으로 보내어 이를 확인하려 하였다. 신라에서는 나라를 보호하는 사천왕사를 보여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여 사천왕사 남쪽에 따로 새 절을 지어 보여 주었다. 당나라 사신이 절 앞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것은 사천왕사가 아니고, 망덕요산(亡德遙山)의 절이군요” 하고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신라 사람들이 황금 1,000냥을 주었더니 당나라로 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