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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일성이사금, 농토를 넓히고 백성들의 사치를 금하다 신라 제7대 일성이사금(재위 134~154)은 유리이사금의 큰아들(갈문왕* 일지의 아들이라고도 함)로 왕비는 지소례왕의 딸인 박씨이다. 경주 남산 서쪽 기슭에 있는 무덤은 흙을 둥글게 쌓아올린 원형봉토분으로 특별한 장식이 없다. 무덤의 밑 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둘레돌을 돌려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였다. 무덤 앞의 2단의 축대는 경내를 보호하기 위해 최근에 만든 것이다. 20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북쪽 변방을 침입하는 말갈인들을 막아냈고, 농토를 크게 넓히고 제방을 쌓는 등 농업을 권장하였다. 백성들에게는 금, 은, 보석의 사용을 금지하여 사치를 부리지 못하도록 하였다. 『삼국사기』권 제1 「신라본기」제1 일성이사금 조를 보면 백성을 사랑한 왕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11년(144) 봄, 영을 ..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28~신라 제7대 일성이사금 일성이사금은 유리이사금(신라 제3대 왕)의 맏아들이며 왕비는 박씨로 지소례왕의 딸이다. 권 제1 신라본기 제1 5년(138년) 봄 2월, 금성(신라의 첫 궁궐)에 정사당(국가 중대사를 회의하는 장소)을 설치하였다. 가을 7월, 알천(지금의 북천) 서쪽에서 열병식을 크게 거행 하였다. 6년(139년)에는 말갈의 침입이 있었고, 7년(140년)에는 말갈의 침입을 방비하였다. 11년(144) 봄 2월, 영을 내려 "농사는 정치의 근본이요 밥먹기는 오로지 백성이 하늘로 여기는 것이니 여러 주군에 제방을 수리하고 농토를 널리 개척하라"하였고 또 "민간에서 금은주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권 제1 신라본기 제1 일성왕 때 말갈이 침입이 있었고, 압독국(지금의 경북 경산에 위치한 소국)의 반란이 있..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11~경주 무열왕릉 더보기
지마이사금, 가야를 공격하고 왜구와 말갈의 침입을 막아내다 신라 제6대 지마이사금(재위 112~134)은 파사이사금의 아들로 왕비는 애례부인 김씨이며 갈문왕 마제의 딸이다. 『삼국사기』에는 태자 시절에 결혼하게 되는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23년간 재위에 있으면서 가야를 공격하고, 왜구와 말갈의 침입을 막았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남산자락에 있는 무덤은 흙을 둥글게 쌓아올린 원형봉토분으로 특별한 장식이 없으며 최근에 설치한 혼유석(영혼이 나와 노니는 곳)이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지마이사금의 재위 기간 동안 유난히 자연재해가 많았음을 볼 수 있는데, 우박과 서리, 홍수와 태풍, 가뭄 그리고 일식, 지진 등이 있었다. 115년, 봄 가야가 침범하자 왕은 직접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황산하(지금의 낙동강 하류)를 지나 가야를 공격하였는데, 가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