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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불교사원실> 신설 별처럼 무수히 많았던 신라의 사찰과 탑을 만나는 공간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최선주)은 오는 11월 24일(수) 『삼국유사』에 전하는 “절이 별처럼 많고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었다(寺寺星張 塔塔雁行)”는 구절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전시실을 선보인다. ‘불교사원실’이라고 불릴 새 전시실은 신라미술관 2층에 있던 기존 황룡사실을 공간과 내용 면에서 크게 확장하여 신라의 최초 사찰인 흥륜사부터 9~10세기 사리기까지 아우르는 풍성한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지진에 대비한 면진 진열장 설치, 전면 저반사 유리 도입으로 문화재 안전과 전시 관람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신라미술관 중층의 환경을 개선하고 2층 계단 홀 공간을 전시의 일부로 편입하여 관람객들이 중층을 거쳐 2층 불교사원실로 보.. 더보기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12~경주 황룡사터 더보기
신라의 미소, 얼굴무늬 수막새_국립경주박물관 신라의 미소, 얼굴무늬 수막새 전시- 국립경주박물관, 보물지정을 기념하여 특집진열 - 국립경주박물관(관장 민병찬)은 10월 19일(금)부터 2018년 12월 14일(금)까지‘신라의 미소, 얼굴무늬 수막새’를 특집진열한다. 2018년 10월 2일 문화재청은 이 수막새의 보물 지정을 예고하였다. 국내 기와가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뜻깊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보물 지정 예고에 즈음하여, 얼굴무늬 수막새를 특집진열한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신라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신라의 기와다. 일제강점기 경주 영묘사 터[靈廟寺址]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한다. 이 수막새는 1934년 골동상점에서 거래된 뒤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고 박일훈(朴日薰) 전 국립박물관 관장이 그 소재를 수소문하여.. 더보기
국립경주박물관 기획특별전 ‘황룡사’_출토유물 7백점 전시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은 2018년 5월 25일(금)부터 9월 2일(일)까지 특별전 ‘황룡사’를 개최한다. 6백점 유물을 한눈에 보는 최초·최대의 황룡사 특별전 이번 전시는 황룡사찰주본기(보물 제1870호) 등 4만여 점 출토 문화재 가운데 엄선된 6백여 점을 한 자리에 모아 선보이는데, ‘황룡사’ 를 주제로 한 최초의 특별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신라의 3대 보물 가운데 구층 목탑과 장육존상 2개를 보유하고 있던 황룡사는 신라 최대의 사찰이었다. 황룡사지는 1968년부터 1973년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뤄진 바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황룡사실을 상설 운영하면서 종래 1백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이번 특별전에서는 새롭게 5백여 점을 더하여 황룡사의 전모를 가늠할 수.. 더보기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고려시대의 경주 경주의 고려시대를 집중 조명하는 최초의 전시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은 2016년 7월 12일(화)부터 9월 4일(일)까지 특별전 “고려시대의 경주”를 개최한다. 신라의 천년왕도로 주목받는 경주의 고려시대를 조망하는 첫 전시이다. 도시경관과 지역사회를 키워드로 풀어가는 고려 오백년 경주의 역사“경주”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번 전시는 신라가 멸망한 935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시대 경주 지역 사회의 변화와 지역민들의 삶을 ‘도시경관’과 ‘지역사회’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불국사 석가탑 중수기(국보 126호) 등 국보 3점, 보물 15점을 비롯해 모두 500여점의 문화재를 【프롤로그:경주의 탄생, 1부 읍성과 지역사회 운영, 2부 호국의 상징 황룡사, 3부 지역사회와 불교사원.. 더보기
진흥왕, 일통삼한의 기반 한강을 점령하다.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24대 진흥왕의 능이다. 외부모습은 흙을 둥글게 쌓아올린 원형봉토분으로 아래쪽에는 자연석을 사용하여 무덤을 보호하는 둘레돌을 갖춘 것으로 여겨지나 지금은 몇 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삼국통일 이전 신라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의 능으로서는 규모가 아주 작은 편에 속한다.『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법흥왕과 같은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반대방향으로 2㎞ 떨어져 있다. 때문에 서악동에 있는 서악리고분 4기 가운데 아래에서 세 번째 무덤을 진흥왕릉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진흥왕은 신라 제24대 왕(재위 540∼576)으로 성은 김씨, 이름은 삼맥종 또는 심맥부이다. 지증마립간의 손자로, 법흥왕의 아우 입종갈문왕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 김씨이며, 왕비는 박씨로.. 더보기
선덕여왕, 세 가지 일을 미리 알다.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낭산 정상에 있는 선덕여왕의 무덤이다. 외부 모습은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으로 둘레돌(무덤의 가장자리 기슭에 돌아가면서 늘어놓은 돌로 무덤의 흙이 무너져 내리 것을 막는 역할을 함)을 쌓고 다시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무덤이다. 선덕여왕은 신라 제27대 왕(632∼647)으로 성은 김씨, 이름은 덕만이다. 진평왕의 큰 딸로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다.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 : 성스러운 여자 황제)”란 호를 올렸다. 신라에서 여자인 선덕여왕이 처음으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성골’이라는 특수한 왕족 신분 때문이었다. 신라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 사적 182호 『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이 미리 알아서 맞춘.. 더보기
진평왕, 하늘이 내린 옥띠를 받다. 신라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의 능으로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아래쪽 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둘레돌(무덤의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보호하기 위해 쌓은 돌)을 둘렀는데, 지금은 몇 개만 남아 있다. 진평왕의 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백정이다. 아버지는 진흥왕의 태자인 동륜이며, 왕비는 마야부인이다. 왕은 태어나면서부터 얼굴이 신기하고 키가 크고, 똑똑했다고 한다. 작은 아버지인 진지왕이 화백회의(신라 때에,진골 이상의 귀족들이 나라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던 회의 제도로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찬성해야 중요한 내용이 통과되는 만장일치제임)에 의해 왕에서 쫓겨나자 왕위에 올랐다. 진평왕은 56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왕권을 굳게 세우기 위해 새로운 중앙 행정부서들을 만들었다. 관리들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