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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

신라 천년의 궁성, 마지막 흔적을 엿보다 -경주 월성 본격 발굴조사로 전환-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심영섭)는 지난해 12월 12일 고유제를 시작으로 조사한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慶州 月城, 이하 월성)’ 중앙지역(57,000㎡)의 시굴조사 성과를 공개한다. 경주 월성 중앙지역 전경(사진 : 문화재청) 이번 시굴조사는 지하 매장구조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고자 실시하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건물지와 담장의 흔적들은 유적 내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국 시대에서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친 토기와 기와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경주 월성 조사는 1914년 일제가 남벽 부근을 처음 파헤친 지 100년 만에 우리 손으로 실시한 최초의 내부조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3호 건물지와 부속시설(사진 : 문화재청.. 더보기
황복사, 신라왕실의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던 곳 경주구황리3층석탑(慶州九黃里三層石塔) 국보 37호 황복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낭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절터로 3층 석탑과 2기의 귀부(비석을 세워 두는 거북모양의 받침돌)가 남아있고 금당터로 여겨지는 곳에 12지신상(열 두해 띠를 상징하는 동물신상)조각이 묻혀 있다. 임금 왕(王)이 세겨진 황복사지 귀부 절을 세운 사람과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의상(625~702)대사가 머리를 깎고 출가한 절이라는 기록으로 볼 때 신라 제27대 선덕여왕(632~647) 이전에 이미 절이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황복(皇福)”이라는 절 이름을 통해 신라왕실의 복을 빌던 절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943년 일본인들이 탑을 해체, 수리하면서 2층 몸돌 안에서 금동 사리함과 금동.. 더보기
망덕사지 당간지주 더보기
경주시, 신라국학 1330주년 학술대회 개최 경주시에서는 “신라국학 창립 1330주년”을 맞이하여 2012. 5.21~5.23까지 2박3일간 일정으로 기념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신라국학’은 우리나라 최초의 교육기관(국립대학)으로서 신문왕 2년(682년)에 창립하여 현재의 “서울대학교” 전신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번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공동주최하며, 성균관 및 경주향교 공동 주관으로 1일차 기념식은 경주향교에서, 2일차 국제학술대회는 경주교육문화회관에서 개최하고, 3일차 역사문화유적투어는 세계문화유산지역등지에서 실시한다. 기념식은 국내외 대학총장, 교수, 전국향교대표, 일반유림대표, 지역인사등 600명을 초청하여 축하기념식, 습의석전, 국악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실시된다. 경주향교 "대성전"(사진 : 경주시정뉴스) 국제.. 더보기
만파식적과 옥피리_국립경주박물관 특별진열 국립경주박물관은 7월 19일(화)부터 9월 18일(일)까지 소장 옥피리 두 점을 선보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두 점의 옥피리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5년 8월에 국립박물관에 입수된 것으로 조선시대 문인들의 여러 문집에서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옥피리를 신라 신문왕대의 대나무피리(만파식적)와 같이 적을 물러나게 하고 병을 치유하는 신이한 기물(神物)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고대의 ‘만파식적’에 대한 기원과 소망을 옥피리가 고스란히 이어 받았던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만파식적’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 문화재에 표현된 천인이 연주하고 있는 피리를 참고하여 그 모양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파식적’은 아니지만 천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