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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

천년 세월 속을 거닐다 007~경주 남간사지 당간지주 더보기
‘신라의 호국사찰, 경주 망덕사’-국립경주박물관 특집진열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특집진열 ‘신라의 호국사찰, 경주 망덕사’를 5월 5일부터 7월 4일까지 마련합니다. 이 특집진열은 경주 망덕사터에서 출토된 문화재를 처음 전시하는 자리입니다. 1. 용얼굴무늬 사래기와, 망덕사터 출토, 통일신라, 길이 15.5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2. 용얼굴무늬 수막새, 망덕사터 출토, 통일신라, 지름 12.2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경주시 배반동에 그 터가 남아 있는 망덕사(望德寺)는 679년(문무왕 19년)에 세운 신라의 호국 사찰입니다.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674년 신라에 패한 당나라는 이듬해 50만 군사를 동원해 신라를 다시 공격했습니다. 신라는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지어 불심으로 당.. 더보기
망덕사, 나.당전쟁 때 당나라를 속이기 위해 세운 절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낭산 남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사 맞은편에 있는 절터이다. 지금 이 곳에는 금당, 강당, 동서목탑, 중문, 회랑 등의 건물터가 남아있고 절의 서쪽 편에는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문무왕 19년(679)에 중국 당나라가 침입하자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사천왕사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문이 당나라에 전해지자 예부시랑 악붕귀를 사신으로 보내어 이를 확인하려 하였다. 신라에서는 나라를 보호하는 사천왕사를 보여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여 사천왕사 남쪽에 따로 새 절을 지어 보여 주었다. 당나라 사신이 절 앞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것은 사천왕사가 아니고, 망덕요산(亡德遙山)의 절이군요” 하고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신라 사람들이 황금 1,00.. 더보기
사천왕사, 명랑스님이 문두루비법으로 당나라를 물리치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에 있는 절터로 선덕여왕의 무덤이 있는 낭산 남쪽 아래에 있다. 사천왕사(사적 8호)는 2006년 4월 부터 2011년 현재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절터에는 금당을 중심으로 동,서탑 및 좌우경루의 건물터를 비롯하여 머리가 잘려 나간 귀부 2기와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그리고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천왕 전(벽돌)은 신라에서 조각으로 유명한 양지스님의 작품이라고 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절들은 모두 금당(부처님을 모신 건물) 앞에 3층 또는 5층탑 하나만을 세우는 일탑가람 형식이었으나, 통일 이후에는 금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탑을 세우는 쌍탑가람 형식으로 바뀌었는데, 이 사천왕사가 쌍탑가람 형식의 최초의 절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 더보기
보문리 절터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로 일제 강점기 때 이곳에서 “보문사(普門寺)”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보문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절이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제48대 경문왕(861~875) 11년(871)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은 모두 논으로 바뀐 이 곳 절터에는 금당(절의 본 건물로 부처님을 모셔둔 곳), 동서목탑 등의 건물터와 석조(큰 돌을 파서 물을 부어 쓰도록 만든 기구), 당간지주 2기와 초석(건물의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 석등(돌로 만든 등) 조각 등이 남아 있다. 경주보문리당간지주(慶州普門里幢竿支柱) (보물 123호) 보문사터 북쪽에 세워져 있는 이 당간지주의 양 기둥 가운데 북쪽의 기둥은 윗부분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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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간사지, 일념스님이 이차돈의 무덤에 예불하는 결사문을 지은 곳 나정, 양산재를 지나 남간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남산기슭의 논 가운데 당간지주가 서 있다. 최근에 논을 없애고 주변을 정리하였다. 남간사는 남간마을에 있었던 절터로 주변에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8각의 대좌와 석정(신라시대의 우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3호) 등이 있고 마을 안 여러 집들에서 사용하고 있는 초석(목조건물의 기둥으로부터 전달되는 건물의 무게를 받치는 기둥돌)과 축대(집터나 건물터의 땅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삼국유사』권3 「흥법」제3 "원종흥법 염촉멸신(원종이 불법을 일으키고 염촉이 순교하다)" 편에 아래와 같이 남간사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원화(806~820) 연간에 남간사 중 일념이「염촉의 향분(무덤)에 예불하는 결사문」을 지었는데… 남간사지당간지주 (南澗寺址幢.. 더보기
보문동 연화문당간지주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慶州 普門寺址 蓮華文 幢竿支柱) 보물 제910호 보문사 절터에 있는 당간지주로 위쪽 바깥면의 네모난 틀 안에 8장의 연꽃잎이 새겨져 있는 특이한 모습을 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 기도나 법회 등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더보기
남간사지 당간지주 경주남간사지당간지주(慶州南澗寺址幢竿支柱) 보물 제909호 남간사는 경주시 탑동 남간마을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의 절로 세워진 때와 세운 사람은 알 수 없지만, 애장왕과 헌덕왕 때, 이 절의 승려였던 일념(一念)이 "촉향분예불결사문(염촉, 즉 이차돈의 무덤에 불공하는 단체를 모은 취지문)"을 지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헌덕왕 이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당간지주는 현재 논 한가운데 있으며 양 지주에는 당간을 고정하기 위해 각각 2개씩의 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특이하게 꼭대기에는 십(十)자 모양의 홈이 있다. 더보기
사천왕사지 당간지주 사천왕사지당간지주(四天王寺址幢竿支柱) 비지정문화재 경주 낭산 아래, 사천왕사터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이 당간지주는 당간을 고정하는 구멍이 양 지주 좌우에 각각 3개씩 뚫려 있다. 특이한 점은 상,하의 구멍은 네모난 모양이지만 가운데 구멍은 둥근 모양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