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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波息笛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조선시대의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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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조선시대 경주의 역사와 문화,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사상, 정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특별전 917()부터 1110()까지 개최합니다. 


신라의 수도(首都)로서 천년 동안 번영을 누렸던 경주는 고려시대에 들어와 하나의 지방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쪽의 서울을 뜻하는 동경(東京)’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의 매우 중요한 고을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오랜 역사적 전통과 위상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경주에서는 또 다른 천년의 문화가 꽃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와 조선시대의 경주는, 신라시대의 경주에 가려져 그다지 주목받지 못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경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고려시대는 물론이거니와 조선시대를 살았던 경주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이러한 점을 인식하여 신라 이후의 경주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서 조선시대의 경주에 대한 특별전을 처음으로 개최합니다.

조선시대 경주 사람들은 신라의 수도였던 역사적 전통을 바탕으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자신의 고장인 경주를 특별히 동경(東京)’, ‘동도(東都)’라고 즐겨 불렀던 사실은 경주 사람들의 자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번 전시에는 이러한 조선시대 경주의 역사와 문화, 당시 사람들의 생활,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정서를 보여주는 180여 점의 문화재가, ‘조선의 동쪽 서울, 경주’, ‘경주에 살다’, ‘학문과 사상이 꽃피다’, ‘신라의 전통을 이어가다’, ‘싸워서 나라를 지키다’, ‘불교문화를 다시 일으키다’, 등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뉘어 선보입니다.


1. ’조선의 동쪽 서울, 경주

조선시대에 경주는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성을 띠는 지역으로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8세기 말에 경주를 그린 회화식 지도인 경주읍내전도(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가 경주를 처음 찾아옵니다. 아울러 1699년 경주 부사(부윤) 민주면(閔周冕)의 주도로 경주에서 간행한 경주 지역의 역사지리지인 동경잡기(東京雜記)가 판목과 나란히 선보이며, 조선시대 역대 경상도 관찰사의 명단으로서 경주에 보관되어 왔던 당하제명기(棠下題名記)도 전시됩니다.

경주는 일찍이 조선 태조 재위시절에 태조 어진을 봉안하였던 중요한 고을이었습니다(집경전(集慶殿). 전주 경기전(慶基殿)의 태조 어진(보물 제931)도 경주 집경전의 태조 어진을 모사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전주 경기전의 태조 어진 복제품이 참고자료로 나옵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경주 집경전의 태조 어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경주에 오가는 사신이 머물었던 관사(官舍)인 동경관(東京館)의 현판과 함께, 동경관에 모셔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임금의 상징인 전패殿牌가 처음으로 공개됩니다.


2. ’경주에 살다

조선시대의 경주는 지금의 경주시와 울산, 포항, 영천 등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었습니다. 이 시기 경주 사람들의 생활과 경제적, 사회적 배경을 여러 문헌기록으로 살펴봅니다. 특히 1669년 경주 부윤이었던 병와 이형상(1653~1719)이 주관한 유교적 예법인 향음주례(鄕飮酒禮)를 기록하고 그린 동도향음례(東都鄕飮禮)(인천시립박물관 소장)가 경주를 찾아옵니다. 아울러 경주 양동마을 관련 자료, 경주 출신으로 과거시험에서 장원 급제하였던 질암 최벽(1762~1813)의 합격증서인 홍패(紅牌), 조선 전기에 경주에서 만들어 한양에 바쳤던 장흥고(長興庫)글자가 새겨진 분청사기 등이 전시됩니다.


3. ’학문과 사상이 꽃피다

경주는 신라 때부터 유학의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깊은 고장이었습니다. 경주에 7년 동안 머물며 우리나라 최고의 전기체(傳奇體) 소설인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 관련 자료,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신라 금석문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열정을 보여주는 문무왕비편이 출품됩니다. 회재 이언적(14911553)은 조선 성리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 동방오현(東方五賢)의 한 명으로 추앙되고 있는 경주 안강 출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입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중용구경연의같은 그의 저술과 친필이 전시됩니다. 이 밖에 경주는 수운 최제우(1824~1864)의 고향으로서 동학(東學)의 발상지였다는 사실도 매우 중요하므로 경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4. ’신라의 전통을 이어가다

조선시대의 경주 사람들은 주변에 산재한 신라의 문화유산들을 보전하며 새로운 문화와 사상을 창조해 나갔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은 그 대표적인 예로서, 이번 특별전에서는 종각 중수기 현판 2(1826, 1897), 종각에 종을 매다는 데 사용했던 걸쇠 한 쌍, 종을 쳤던 당목(撞木)을 모두 공개합니다. 그리고 옛 신라 왕에 대한 지속적인 숭배를 보여주는 1904년 작 경순왕 영정(경북유형문화재 제410)과 함께, 경주 김씨 사당인 숭혜전(崇惠殿)에 보관되어 왔던 의례용 가마를 최초로 공개합니다. 이와 더불어 신라 때 나라를 지켜주던 보물인 만파식적(萬波息笛)과 동일시되어 조선시대에도 신기의 보물로 인식되었던 옥피리(옥적)도 상세히 소개됩니다.


5. ’싸워서 나라를 지키다

임진왜란(1592~1598)은 조선시대 경주의 역사에서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나라와 고장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당시 사람들의 노력을 조명합니다. 경주읍성의 탈환에 사용하여 일본군을 물리쳤던 신무기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비롯하여, 세 발의 총을 한 번에 쏠 수 있는 삼안총(三眼銃)(보물 제884), 경주 부윤의 갑옷과 투구, 경주 의병들의 활약과 우국충정의 정신을 보여주는 각종 문집 등이 전시됩니다.


6. ‘불교문화를 다시 일으키다

임진왜란 때 불교계는 일본군에 맞서 싸워 전란 극복에 기여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피해를 입은 사찰의 복구를 위해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1680년의 분황사 보광전 중창문, 기림사의 중수를 후원한 경주 부윤을 기리는 1786년의 김부윤공덕비, 그리고 기림사 대적광전의 소조비로자나불상 안에 들어있던 조선 전기의부모은중경(보물 제959-4-2)가 선보입니다. 특히 통일신라 석탑인 안강 정혜사 터 십삼층석탑에서 나온 1765년의 중수기 목판은 이번 전시에서 실물이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조선 후기에 활발했던 불교신앙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 특별전이 조선시대의 경주에서 살았던 선인들의 문화와 삶, 그리고 생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이 전시회를 계기로 경주의 조선시대에 대한 새롭고 다양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앞으로도 경주의 고려와 조선시대를 조명하는 특별전들을 지속적으로 열어 갈 것이며, 그 성과는 국립경주박물관 상설전시의 시대적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데 반영될 것입니다.



기간: 2013917() ~ 1110() 월요일 휴관

장소: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이 자료에 대하여 더욱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 학예연구사 허형욱(054-740-7535)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http://gyeongju.museum.go.kr/) 보도자료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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