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주문화유산답사

나정, 신라 천년 역사의 여명

반응형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우물터이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강(하늘에서 세상으로 내린다는 뜻으로, 임금이나 성인이 세상에 태어남을 이르는 말) 전설이 깃든 곳이다. 오릉에서 남동쪽으로 약 1㎞쯤 떨어진 작은 소나무숲 속에 있는 우물터가 나정(담쟁이덩굴이 우거진 우물이라는 뜻)이다.

경주나정(사적 245호)

 2002년부터 2005년 까지 실시한 발굴 조사 결과 신궁으로 여겨지는 8각 건물터와 우물터 및 기와, 토기, 철구류 등의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고 발굴 되었다. 이것들을 통해 신화로만 여겨져 왔던 혁거세거서간의 건국 이야기들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 되었다.

김부식이 지은『삼국사기』권 제1 「신라본기」 제1 시조 혁거세거서간 조에 이 우물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하고 있다.

진한 6촌의 하나인 고허촌의 촌장 소벌공이 하루는 양산 아래 나정 우물곁에 있는 숲 사이를 바라보니 말 한마리가 무릎을 꿇고 울고 있으므로 그곳으로 찾아가 보니 그 말은 간 곳이 없고 다만 있는 것은 큰 알 뿐이었다. 그 알을 깨어보니, 그 알 속에는 한 어린아이가 나왔다. 소벌공이 이 아이를 데려다가 길렀더니, 날로 자라나 나이 열 살에 이르렀을 때 남들보다 유달리 뛰어나게 되었다. 이에 여섯 마을 사람들은 그 아이의 출생이 이상하였던 까닭에 그를 높이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다. 진한 사람들은 호(瓠)를 박이라 하였는데 큰 알이 바가지와 같다 하여 박(朴)으로 성을 삼았다. 거서간으로 왕호를 삼았는데 진한 사람들의 말에 왕 또는 귀인이란 뜻이다.

시조탄강유허비(조선 순조3년, 1803)

일연스님이 지은『삼국유사』기이 제1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도 나정 우물에 관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임자년(기원전 69년) 3월 초하루에 여섯 마을의 촌장들이 각기 자식들을 거느리고 알천 남쪽 언덕에 모여 다음과 같이 의논했다. “우리는 위로 임금이 없이 백성들을 다스리기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방자(건방지고 거리낌이 없음)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다.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리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아래 나정 옆에 번갯불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땅을 뒤덮었고 백마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찾아가 보니 자주색 알이 하나 있었다. 말은 사람들을 보더니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알을 깨트려 사내아이를 얻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뛰어나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놀라 이상히 여겨 동천에서 목욕을 시키니, 몸에서 빛이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며 하늘과 땅이 진동하고 해와 달이 맑아졌다. 그래서 혁거세(赫居世 : 신라말로 불구내라고도 하는데, 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라 이름하고 왕호를 거슬한(거서간 : 왕을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위의 두 책에 전하는 기록을 보면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이 태어나고 처음 나라를 세운 곳이 나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창림사지에서 바라본 나정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