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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진열

하늘과 소통하는 동물, 말-특별진열(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갑오년을 맞이하여 특집진열 ‘하늘과 소통하는 동물, 말’을 신라미술관 1층에서 1월 28일(화)부터 4월 27일(일)까지 개최합니다.▶청동제 말모양 허리띠, 경북 영천 어은동 출토, 1세기대, 길이 15.8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청동제 말, 경북 영천 어은동 출토, 1세기대, 길이 5.5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사진 : 국립경주박물관)말은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일곱 번째 동물로서 남쪽 방향에 해당하며, 양(陽)의 기운을 대표합니다. 이는 강하고 생동감 넘치는 말의 속성과 부합되는 것으로서, 말에 대한 옛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말을 키웠습니다. 부여(扶餘)에서는 명마가, 예(濊)에서는 키가 작은 과하마(果下馬)가.. 더보기
국립경주박물관 특집 진열_얼굴무늬수막새 수증 40주년 기념 전시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얼굴무늬수막새: 수증 40주년 기념” 특집진열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10월 16일부터 11월 25일까지 미술관 2층에서 열립니다. “신라의 미소”로도 잘 알려져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얼굴무늬수막새는 경주를 나타내는 상징물입니다. 이 수막새는 원래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 경주의 한 고물상에서 당시 경주에 살던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라는 일본인 의사가 구입했던 것입니다. 이 수막새는 1944년 다나카가 일본으로 돌아갈 때 갖고 갔으나, 경주박물관 박일훈 관장의 노력 끝에 1972년 10월 다나카가 직접 박물관에 찾아와 기증하므로써 고국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올해는 얼굴무늬수막새가 우리 곁에 돌아온 지 꼭 40돌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더보기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진열_12년을 기다려 만나는 신비의 동물 용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임진년(壬辰年) 용띠 해를 맞아 특집진열 “12년을 기다려 만나는 신비의 동물, 용”전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1월 17일부터 4월 1일까지 고고관 2층에서 열립니다. 사진 : 국립경주박물관_용머리 장식(金銅龍頭), 월지(月池,안압지), 통일신라시대(8-9세기) 용은 오래 전부터 우리 생활문화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상상의 동물로 신화(神話)나 전설(傳說)에 중요한 소재(素材)로 등장합니다. 용은 사람들의 이상향(理想鄕)으로서 우리 문화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形象化) 되었습니다. 용의 순수 우리말을 ‘미르’라고 합니다. 용은 물과 뗄 수 없는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입니다. 우리 선조들께서는 물에서 태어난 용이 물을 다스려 풍년(豊年)과 풍어(豊漁), 그리고 복(福).. 더보기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진열-조선시대의 경주 지도 국립경주박물관은 “조선시대의 경주 지도” 특집진열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9월 27일부터 10월 30일까지 고고관 2층에서 열립니다. 경주는 신라 천년역사의 본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동쪽의 서울’이란 뜻의 동경(東京)으로 불리며 전통과 자존심을 지켜왔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 경주를 그린 지도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유교적 삶과 가치를 지켜나가면서 전통과 현재를 어떻게 조화시켰는지를 보여줍니다. 전시품은 총 4점입니다. 이 가운데 조선 후기(18세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집(郡縣地圖集)으로서, 전국 지도책인『여도(輿圖)』와 영남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한 경상도 지도책인『영남지도(嶺南地圖)』가 출품됩니다. 이 두 책의 경주부(慶州府) 부분에서 조선시대 경주 지역의 인문지.. 더보기
만파식적과 옥피리_국립경주박물관 특별진열 국립경주박물관은 7월 19일(화)부터 9월 18일(일)까지 소장 옥피리 두 점을 선보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두 점의 옥피리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5년 8월에 국립박물관에 입수된 것으로 조선시대 문인들의 여러 문집에서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옥피리를 신라 신문왕대의 대나무피리(만파식적)와 같이 적을 물러나게 하고 병을 치유하는 신이한 기물(神物)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고대의 ‘만파식적’에 대한 기원과 소망을 옥피리가 고스란히 이어 받았던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만파식적’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 문화재에 표현된 천인이 연주하고 있는 피리를 참고하여 그 모양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파식적’은 아니지만 천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