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문화유산답사 썸네일형 리스트형 경주남산, 부처님의 나라 신라의 옛 수도였던 경주시의 남쪽을 둘러싸고 경주평야의 남북으로 솟아 오른 불교문화유적이 많기로 유명한 산이다. 경주평야의 주위에는 서쪽에 선도산, 동쪽에 낭산과 명활산, 북쪽에 금강산 등 많은 산들이 성벽처럼 둘러서 있는데 그 중에 남쪽으로 높게 솟은 산이 남산이다. 북쪽의 금오산과 남쪽의 고위산 두 봉우리 사이를 잇는 산들과 계곡 전체를 아울러 남산이라고 한다. 제일 높은 봉우리인 금오봉의 높이는 468m이고, 남북의 길이는 약 8㎞, 동서의 너비는 약 4㎞이다. 남산의 지세는 크게 동남산과 서남산으로 나뉜다. 동남산 쪽은 가파르고 짧은 반면에, 서남산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긴 편이다. 동남산과 서남산에는 각각 16개의 계곡이 있고, 남쪽의 2개와 합하여 모두 34개의 계곡이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 더보기 태종무열왕, 백제 사비성 함락, 일통삼한으로 가는 길을 열다.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의 능이다.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원형봉토분으로 무덤 주위에는 무덤의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둘레돌을 돌렸다. 무덤 앞에 있는 귀부(거북모양의 비석 받침돌)위에 얹혀 있는 이수(비석의 맨 윗부분을 장식하는 머릿돌로 보통 용 문양을 새겨둔다)의 앞면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고 새겨진 글귀로 인해 신라시대 왕들의 무덤 중 그 주인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무덤이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의 이름은 춘추(春秋)로 신라 제25대 진지왕(재위 576~579)의 아들인 이찬(신라 17관등 중 두번째, 이척찬이라고도 함) 용춘(또는 용수)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신라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 더보기 김인문, 대당외교로 신라 일통삼한을 이끌다.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김인문의 무덤으로 흙을 둥글게 쌓아올린 원형봉토분이며 특별한 장식이 없다. 무덤 앞의 건물에는 김인문의 업적을 새겼던 비석의 받침돌로 짐작되는 귀부(거북모양의 비석 받침돌)가 있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둘째아들로 자(字: 주로 남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 붙이는 일종의 이름)는 인수, 어머니는 문명태후(김유신의 둘째 여동생인 문희)이다.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의 친동생으로 어려서부터 일찍 학문을 배워서 식견이 넓었으며, 유학을 비롯하여 장자, 노자, 불교와 관련된 모든 책들을 읽었고, 특히 글을 잘 썼는데 아버지 태종무열왕의 비문을 직접 썼다고 한다. 또한 향악(삼국시대부터 궁중에서 전통음악의 한 갈래로 당나라에서 수입된 음악을 당악이라 하였고, 우리의 고유한 전통음악.. 더보기 서악동 3층석탑, 인왕상이 조각된 모전석탑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모전석탑이다. 일반적으로 돌을 다듬어 쌓은 탑을 석탑이라 부르고 구운 전돌(벽돌)을 사용하여 쌓은 탑을 전탑, 나무를 이용하여 세운 탑을 목탑이라고 부른다. 동아시아의 중심이 되는 3국 가운데, 중국을 전탑의 나라, 일본을 목탑의 나라라 부르고 한국을 석탑의 나라로 부른다. 우리나라에도 물론 목탑과 전탑이 있었지만 현재 남아 있는 탑들의 대부분이 석탑들이다. 벽돌로 쌓은 전탑을 모방한 석탑을 보통 모전석탑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경주에 남아 있는 모전석탑은 서악동3층석탑과 경주 남산동 동3층석탑(보물 124호)을 비롯하여 근래에 복원된 경주 서남산 용장계 지곡 제3사지 3층석탑 등 3기가 있다. 서악동 3층석탑은 높이가 5.1m로 탑신부(탑의 몸돌)를 받쳐주는 기.. 더보기 진지왕, 영웅의 아들 왕위에서 폐위되다.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25대 진지왕(재위 576~579)의 능으로 전해지는 무덤으로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원형 봉토분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무덤을 보호하는 둘레돌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몇 개만 드문드문 보이고 있다. 현재 학자들 중 일부는 진지왕의 무덤이 이곳이 아니라 경주시 서악동 태종무열왕릉 뒷편에 있는 4기의 무덤 가운데 아래쪽에서 두번째 무덤을 진지왕릉으로 보기도 한다. 진지왕은 진흥왕의 둘째 아들로 일찍 죽은 동륜태자의 동생이다. 이름은 사륜 또는 금륜이며 어머니는 사도부인(성은 박씨. 모량리 각간 영실의 딸)이며 비는 지도부인(성은 박씨, 기오공의 딸)이다. 진흥왕의 태자인 동륜이 일찍 죽었고 그 아들인 백정(신라 제26대 진평왕)이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더보기 진흥왕, 일통삼한의 기반 한강을 점령하다.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24대 진흥왕의 능이다. 외부모습은 흙을 둥글게 쌓아올린 원형봉토분으로 아래쪽에는 자연석을 사용하여 무덤을 보호하는 둘레돌을 갖춘 것으로 여겨지나 지금은 몇 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삼국통일 이전 신라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의 능으로서는 규모가 아주 작은 편에 속한다.『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법흥왕과 같은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반대방향으로 2㎞ 떨어져 있다. 때문에 서악동에 있는 서악리고분 4기 가운데 아래에서 세 번째 무덤을 진흥왕릉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진흥왕은 신라 제24대 왕(재위 540∼576)으로 성은 김씨, 이름은 삼맥종 또는 심맥부이다. 지증마립간의 손자로, 법흥왕의 아우 입종갈문왕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 김씨이며, 왕비는 박씨로.. 더보기 효현동 3층석탑, 전 애공사지 경상북도 경주시 효현동 외와마을 입구에 있는 석탑으로 통일신라 9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통일 후 8세기까지 거대한 크기의 석탑들에 비해 그 규모가 많이 작아졌지만 신라석탑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2중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탑몸돌)을 세웠는데 지붕돌 네 귀퉁이가 버선코와 같이 날렵하게 들려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탑들은 지붕돌 받침이 보통 5단으로 되어 있는데, 이 탑의 지붕돌 받침은 4단으로 줄어들어 있다. "27년(540) 가을 7월, 왕이 죽으니 시호는 법흥이라 하고, 애공사 북봉에 장사지냈다."-『삼국사기』신라본기 "가을 8월(576), 왕이 죽으니 시호를 진흥이라 하고 애공사 북봉에 장사지냈다."-『삼국사기』신라본기 "신유(661)에 죽으니 나이 59세였다. 애공사.. 더보기 법흥왕, 일통삼한으로 가는 기틀을 마련하다. 경상북도 경주시 효현동에 있는 신라 제23대 법흥왕의 능이라고 전해오는 무덤이다. 경주의 서악이라 불리는 선도산 서쪽 기슭에서 뻗은 낮은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무덤의 내부구조는 알 수 없는데 겉모양은 흙을 둥글게 쌓아올린 원형봉토분이다. 삼국시대 신라 왕릉으로는 비교적 작은 편에 속한다. 무덤의 아래쪽에는 냇돌로 쌓은 둘레돌(무덤의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역할)이 드문드문 들어나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법흥왕은 재위 27년에 죽으니 애공사 북쪽 봉우리에 장사지냈다고 하였고,『삼국유사』에서도 왕의 능은 애공사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현재 이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라 말기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3층석탑이 있는데 애공사지탑(효현리 3층석탑)이라 부르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 더보기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