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창림사,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國王慶膺造無垢淨塔願記) -국왕 경응(신라 제46대 문성왕의 이름)이 무구정탑을 만들고 바램을 기록한 글- 한림랑(신라시대의 관직으로 왕명을 문서로 작성하고 왕의 자문(의견)에 응하던 한림대의 우두머리, 이 관직에는 문장과 학문에 능한 사람들이 임명됨)으로서 새로이 추성군(지금의 전남 담양군) 태수(통일신라시대 군 단위에 파견된 지방관, 지금의 군수)를 제수(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리던 일) 받은 김입지가 국왕의 명을 받아 지음. 듣건데 경전에서 말하기를 공덕(착한 일을 하여 쌓은 업적과 어진 덕)을 짓는 데에는 만 가지의 방법이 있지만, 만물에 무한한 이로움을 주는 것은 탑을 짓는 것 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생각건대 국왕께서는 여러 겁(劫, 무한히 긴 시간) 동안 선행을 행하셔.. 더보기 오릉, 신라초기 박씨 왕들이 묻혀 있는 곳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능으로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에서는 ‘사릉(蛇陵)’이라고도 한다. 모두 5기가 있으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거서간과 왕비 알영, 제2대 남해차차웅(재위 4~24), 제3대 유리이사금(재위 24~57), 제5대 파사이사금(재위 80~112)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는 오릉이 혁거세거서간의 단독 무덤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박혁거세는 61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하늘로 올라갔는데 칠일 후 시신이 땅에 흩어져 떨어졌고 왕비도 세상을 떠났다. 나라 사람들이 한 곳에 장사를 지내려 하자 큰 뱀이 이를 방해했다. 그래서 머리와 사지(두 팔과 두 다리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제각각 장사 지내 오릉으로 만들었는데 이를 사릉이라고도 한다. 담엄사.. 더보기 경애왕, 비운의 왕 포석정에서 스러지다 신라 제55대 경애왕(재위 924~927)의 능은 경주시 배동 서남산 삼릉계곡 입구에 있다. 무덤의 겉모습은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원형봉토분으로 주변에 별다른 장식이 없으며 왕릉으로는 작은 규모에 속한다. 경애왕의 성은 박씨, 이름은 위응으로 아버지는 신라 제53대 신덕왕(재위 912~917)이며 어머니는 의성왕후이다. 그리고 신라 제54대 경명왕(재위 917~924)의 동생이다. 경애왕이 왕위에 오르고 4년째 되는 해인 927년 9월에 고려와 싸움을 하던 후백제 견훤은 갑작스럽게 신라의 고울부(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로 쳐들어온다. 이때 왕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구원군을 요청하지만 후백제 견훤의 군대는 같은 해 11월에 고려의 구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서라벌로 쳐 들어가 포석정에서 잔치를 하며 놀고 있.. 더보기 포석정, 신라 천년 역사의 낙조(落照)를 지켜보다 경주시 배동 남산기슭에 있는 석조유물로 통일신라시대의 연회장소 또는 이궁(왕이 거둥할 때 머무러는 별궁 또는 행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돌로 만든 구불구불한 물길의 형태가 전복 껍질과 같다고 하여 "전복 포(鮑)"자를 써서 포석정이라 부른다. 일연스님이 지은『삼국유사』에 포석정에 관한 많은 기록들이 남아 있다. 권2 "처용랑망해사" 편을 보면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6)이 포석정에 거둥했을 때 남산의 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주위 신하들은 보지 못하고 오직 왕 혼자만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권5 효선 편을 보면 "효종랑(신라말기의 화랑으로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버지)이 남산 포석정에서 놀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통해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포석정이 만들어진 것으로 .. 더보기 지마이사금, 가야를 공격하고 왜구와 말갈의 침입을 막아내다 신라 제6대 지마이사금(재위 112~134)은 파사이사금의 아들로 왕비는 애례부인 김씨이며 갈문왕 마제의 딸이다. 『삼국사기』에는 태자 시절에 결혼하게 되는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23년간 재위에 있으면서 가야를 공격하고, 왜구와 말갈의 침입을 막았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남산자락에 있는 무덤은 흙을 둥글게 쌓아올린 원형봉토분으로 특별한 장식이 없으며 최근에 설치한 혼유석(영혼이 나와 노니는 곳)이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지마이사금의 재위 기간 동안 유난히 자연재해가 많았음을 볼 수 있는데, 우박과 서리, 홍수와 태풍, 가뭄 그리고 일식, 지진 등이 있었다. 115년, 봄 가야가 침범하자 왕은 직접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황산하(지금의 낙동강 하류)를 지나 가야를 공격하였는데, 가야 .. 더보기 국립경주박물관 경상도 개도 700년 기념 특별전-경상북도 1314~1896 개최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상주박물관과 공동기획으로, 경상도 개도(開道) 700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慶尙北道 1314~1896’을 7월 22일부터 9월 14일까지 개최합니다. 올해는‘경상도(慶尙道)’라는 도명(道名)이 사용된 지 7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아시다시피 ‘경상도’라는 이름은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에서 따온 것입니다. 도명의 유래지에 위치한 국립경주박물관과 상주박물관은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경상북도’에 대한 특별전을 공동으로 기획하였습니다. 이 특별전에서는 ‘경상도’라는 도명이 정해진 1314년(고려 충숙왕 원년)부터 ‘경상도’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로 나누어진 1896년(고종 33년)까지, 경상북도 사람들이 이룩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큰 흐름을 돌아봅니다. 특별전은 다.. 더보기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진열-경주 금척리 신라무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2014년 7월 15일(화)부터 10월 26일(일)까지 신라역사관 로비에서 특집진열 ‘경주 금척리 신라 무덤’을 마련합니다. 경주의 중심부가 아닌 외곽 지역에서 발견되는 돌무지덧널무덤의 대표적인 예가 경주 금척리(金尺里) 신라 무덤입니다. 이 금척리에 있는 신라 무덤들은 커다란 묘역을 형성하고 있으며, 현재 사적 제4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번 특집진열에서 소개하는 금척리 무덤은 사적의 구역 밖에서 1981년 상수도 공사 중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조사하였습니다. 최근 부장품들에 대한 보존처리를 마치고 공개하는 것입니다. 이 돌무지덧널무덤에서는 200여점의 부장품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은제 허리띠, 유리구슬 목걸이, 금귀걸이, 큰 쇠칼과 장식, 발걸이[鐙子] .. 더보기 국립경주박물관 특집진열-‘치유와 염원의 상징, 약사불의 세계’ 개최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4월 29일(화)부터 7월 13일(일)까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특집진열 ‘치유와 염원의 상징, 약사불의 세계’를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1층 로비에서 개최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모두 튼튼히 오래 사는 것을 바랍니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치유)’이란 말이 그것을 반영합니다. 오늘날처럼 의료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종교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불교의 경우 그 대표적 신앙의 대상으로서 약사불(藥師佛)이라는 부처님이 존재합니다.약사불은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외형적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한쪽 손에 약이 담긴 그릇을 상징하는 물건을 들고 있는데, 뚜껑이 있는 합(盒)이나 뚜껑이 없는 단지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때로는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더보기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