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황복사, 신라왕실의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던 곳 황복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낭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절터로 3층 석탑과 2기의 귀부(비석을 세워 두는 거북모양의 받침돌)가 남아있고 금당터로 여겨지는 곳에 12지신상(열 두해 띠를 상징하는 동물신상)조각이 묻혀 있다. 절을 세운 사람과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의상(625~702)대사가 머리를 깎고 출가한 절이라는 기록으로 볼 때 신라 제27대 선덕여왕(632~647) 이전에 이미 절이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황복(皇福)”이라는 절 이름을 통해 신라왕실의 복을 빌던 절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943년 일본인들이 탑을 해체, 수리하면서 2층 몸돌 안에서 금동 사리함과 금동 불상 2구(국보 79호인 금제여래좌상과 국보 80호인 금제여래입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더보기
보문사, 보문동 절터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로 일제 강점기 때 이곳에서 “보문사(普門寺)”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보문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절이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제48대 경문왕(861~875) 11년(871)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은 모두 논으로 바뀐 이 곳 절터에는 금당(절의 본 건물로 부처님을 모셔둔 곳), 동서목탑 등의 건물터와 석조(큰 돌을 파서 물을 부어 쓰도록 만든 기구), 당간지주 2기와 초석(건물의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 석등(돌로 만든 등) 조각 등이 남아 있다. 보문사터 북쪽에 세워져 있는 이 당간지주의 양 기둥 가운데 북쪽의 기둥은 윗부분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당간을 고정하기 위해 3개의 구멍이 나 있는 남쪽 기둥.. 더보기
진평왕, 하늘이 내린 옥띠를 받다. 신라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의 능으로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아래쪽 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둘레돌(무덤의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보호하기 위해 쌓은 돌)을 둘렀는데, 지금은 몇 개만 남아 있다.진평왕의 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백정이다. 아버지는 진흥왕의 태자인 동륜이며, 왕비는 마야부인이다. 왕은 태어나면서부터 얼굴이 신기하고 키가 크고, 똑똑했다고 한다. 작은 아버지인 진지왕이 화백회의(신라 때에,진골 이상의 귀족들이 나라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던 회의 제도로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찬성해야 중요한 내용이 통과되는 만장일치제임)에 의해 왕에서 쫓겨나자 왕위에 올랐다. 진평왕은 56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왕권을 굳게 세우기 위해 새로운 중앙 행정부서들을 만들었다. 관리들의 .. 더보기
신라의 신분제도, 성골과 진골 그리고 육두품 신라시대에는 혈통의 높고 낮음에 따라 신분을 엄격히 구분하였는데 왕족을 대상으로 한 골제와 귀족과 일반백성을 두품제로 구분하였는데 이것을 골품제도라고 한다. 신라는 골품제도를 통해 벼슬, 결혼, 옷차림, 집의 크기, 수레 등의 규모와 장식 등 사회생활 전체에 걸쳐 엄격하게 규제하였다. 신라의 국가 형성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골품제도는 6세기 초에 법으로 정해진 후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멸망에 이를 때까지 이 제도를 엄격하게 지켰다. 신라시대 골품제도에서 최고의 신분 계급은 성골과 진골이다. 특히 성골은 그 중 가장 높은 신분으로 왕족 중에서도 일부만 차지하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시조인 혁거세 거서간부터 제28대 진덕여왕까지 왕들을 성골이라 하였으나, 『삼국유사』에는 제23대 법흥왕에서 진덕여왕에.. 더보기
천마총, 자작나무 껍질 말다래에 그린 천마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 안에 있는 신라시대의 왕릉으로 추측하고 있는 고분으로 둘레 47m, 높이 12.7m에 달하는 돌무지덧널무덤이다. 1973년 문화재관리국은 황남대총을 발굴조사 하기 위한 예비조사로 발굴을 하였는데, 발굴조사 결과 무덤 안에서 자작나무껍질에 채색으로 천마를 그린 말다래(장니:국보 제207호)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천마총에서는 장신구류 8,766점, 무기류 1,234점, 마구류 504점, 그릇류 226점, 기타 796점으로 모두 1만 1500여 점의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천마총에서 발굴된 유물들 가운데 천마도는 말의 양쪽 배를 가리는 가리개로, 말이 달릴 때 튀는 흙이나 먼지를 막는 역할을 하며 장식물로도 사용되었다. 자작나무 껍데기를 여러 겹으로 겹쳐서 누빈 위에.. 더보기
미추이사금, 죽엽군(댓잎을 귀에 꽂은 병사)으로 나라를 구하다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 안에 있는 신라 제13대 미추이사금(재위 262~284)의 능이다. 미추왕의 성은 김씨로 신라 제12대 첨해이사금(재위 247~261)이 아들 없이 죽자 추대(윗사람으로 떠 받듬)를 받아 신라 최초의 김씨 임금이 되었다.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7대 후손이며, 갈문왕(왕의 아버지, 장인, 외조부, 형제 또는 여왕의 남편 등에게 내리던 칭호로 왕과는 엄연히 구별되었지만 왕에 버금가는 높은 지위였다) 구도(신라 상대의 왕족으로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때 파진찬이 되었다. 신라 제9대 벌휴이사금 때는 좌군주가 되어 소문국을 정벌하였고, 188년과 189년에는 신라를 침공한 백제를 크게 물리쳤다)의 아들이다. 왕비는 광명부인이다. 262년에 왕이 되어 284년 승하할 때까지 23년간 재위.. 더보기
대릉원, 마립간 시기 신라왕실의 무덤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으로 경주지역에 흩어져 있는 여러 고분군들 가운데 중심부분에 해당하는 이 지역에는 현재 20여 기의 크고 작은 고분들이 남아 있다. 이 고분들 가운데 신라 13대 미추왕의 능이라 전하는 무덤을 중심으로 고분들이 밀집된 곳을 1973년에 “대릉원”이라는 고분공원으로 만들었으며, 그 안에는 천마총(색이 칠해진 천마도가 나옴)·황남대총(표주박 모양으로 연결된 두 개의 무덤으로 남자와 여자의 무덤) 등이 포함되어 있다. 외형상으로는 모두 원형봉토분(흙으로 둥글게 쌓아올린 무덤)으로 규모는 지름 80m, 높이 20m에 이르는 왕릉급의 대형 무덤에서부터 지름이 불과 몇 m에 불과한 소형 무덤까지 다양하다. 대릉원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무덤들은 대부분 삼국시대 신라 특유의 돌무지.. 더보기
나정비명, 신라 시조왕 탄강정허비명 신라(新羅) 시조왕(始祖王) 탄강정허비명(誕降井墟碑銘)-나정비명(蘿井碑銘) 신라(新羅)의 나라 됨이 무릇 삼성(三姓)이니, 박씨(朴氏)의 건국은 한(漢)나라 때로서 그 후에 석씨(昔氏)와 김씨(金氏)가 서로 이었는데 석씨는 전쟁을 자주하여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고, 김씨는 38세를 전하여 경순왕 때에 고려에 나라를 양도하여 삼한이 통일되었다. 석씨는 무력으로 나라를 지켜왔고 김씨는 겸양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전하였으니, 모두 후세에 전할 만하나 동국(東國) 사람들이 박씨를 더욱 사모하게 되는 것은 그 건국한 공로가 심히 커서 인의(仁義)의 덕이 마음속에 깊이 배었기 때문이다. 신라가 지금은 경주부(慶州府)에 부속되었다. 부남(府南, 경주부 남쪽) 7리 되는 곳에 우물이 있으니, 세상에서 말하기를 “시조왕께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