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썸네일형 리스트형 포항 중성리 신라비, 금동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 황룡사 구층목탑금동찰주본기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예고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보물 제1758호 ‘포항 중성리 신라비’를 국보로 승격 예고하고, 기타 1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포항 중성리 신라비(浦項 中城里 新羅碑)-(사진 : 문화재청) ‘포항 중성리 신라비(浦項 中城里 新羅碑)’는 2012년에 보물 제1758호로 지정된 현존 최고(最古)의 신라비이다. 이 비는 1면 12행에 모두 203자가 각자(刻字)되어 있으며, 신라 관등제의 성립 과정, 신라 6부의 내부 구조와 지방 통치, 분쟁 해결 절차, 궁(宮)의 의미, 사건 판결 후 재발방지 조치 등 신라의 정치·경제·문화상을 알려 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역사적·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비문의 글씨체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와 통하는 고예서(古隸書)로 신라특유의 진솔미를 보.. 더보기 효현동 3층석탑, 전 애공사지 경상북도 경주시 효현동 외와마을 입구에 있는 석탑으로 통일신라 9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통일 후 8세기까지 거대한 크기의 석탑들에 비해 그 규모가 많이 작아졌지만 신라석탑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2중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탑몸돌)을 세웠는데 지붕돌 네 귀퉁이가 버선코와 같이 날렵하게 들려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탑들은 지붕돌 받침이 보통 5단으로 되어 있는데, 이 탑의 지붕돌 받침은 4단으로 줄어들어 있다. "27년(540) 가을 7월, 왕이 죽으니 시호는 법흥이라 하고, 애공사 북봉에 장사지냈다."-『삼국사기』신라본기 "가을 8월(576), 왕이 죽으니 시호를 진흥이라 하고 애공사 북봉에 장사지냈다."-『삼국사기』신라본기 "신유(661)에 죽으니 나이 59세였다. 애공사.. 더보기 법흥왕, 일통삼한으로 가는 기틀을 마련하다. 경상북도 경주시 효현동에 있는 신라 제23대 법흥왕의 능이라고 전해오는 무덤이다. 경주의 서악이라 불리는 선도산 서쪽 기슭에서 뻗은 낮은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무덤의 내부구조는 알 수 없는데 겉모양은 흙을 둥글게 쌓아올린 원형봉토분이다. 삼국시대 신라 왕릉으로는 비교적 작은 편에 속한다. 무덤의 아래쪽에는 냇돌로 쌓은 둘레돌(무덤의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역할)이 드문드문 들어나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법흥왕은 재위 27년에 죽으니 애공사 북쪽 봉우리에 장사지냈다고 하였고,『삼국유사』에서도 왕의 능은 애공사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현재 이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라 말기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3층석탑이 있는데 애공사지탑(효현리 3층석탑)이라 부르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 더보기 망덕사, 나.당전쟁 때 당나라를 속이기 위해 세운 절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낭산 남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사 맞은편에 있는 절터이다. 지금 이 곳에는 금당, 강당, 동서목탑, 중문, 회랑 등의 건물터가 남아있고 절의 서쪽 편에는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나당전쟁 때 부처의 힘으로 당나라를 물리치고자 사천왕사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문이 당나라에 전해지자 예부시랑 악붕귀를 사신으로 보내어 이를 확인하려 하였다. 신라에서는 나라를 보호하는 사천왕사를 보여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여 사천왕사 남쪽에 따로 새 절을 지어 보여 주었다. 당나라 사신이 절 앞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것은 사천왕사가 아니고, 망덕요산(亡德遙山)의 절이군요” 하고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신라 사람들이 황금 1,000냥을 주었더니 당나라로 돌.. 더보기 사천왕사, 명랑스님이 문두루비법으로 당나라를 물리치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에 있는 절터로 선덕여왕의 무덤이 있는 낭산 남쪽 아래에 있다. 사천왕사(사적 8호)는 2006년 4월 부터 2011년 현재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절터에는 금당을 중심으로 동,서탑 및 좌우경루의 건물터를 비롯하여 머리가 잘려 나간 귀부 2기와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그리고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천왕 전(벽돌)은 신라에서 조각으로 유명한 양지스님의 작품이라고 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절들은 모두 금당(부처님을 모신 건물) 앞에 3층 또는 5층탑 하나만을 세우는 일탑가람 형식이었으나, 통일 이후에는 금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탑을 세우는 쌍탑가람 형식으로 바뀌었는데, 이 사천왕사가 쌍탑가람 형식의 최초의 절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 더보기 나정비명, 신라 시조왕 탄강정허비명 신라(新羅) 시조왕(始祖王) 탄강정허비명(誕降井墟碑銘)-나정비명(蘿井碑銘) 신라(新羅)의 나라 됨이 무릇 삼성(三姓)이니, 박씨(朴氏)의 건국은 한(漢)나라 때로서 그 후에 석씨(昔氏)와 김씨(金氏)가 서로 이었는데 석씨는 전쟁을 자주하여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고, 김씨는 38세를 전하여 경순왕 때에 고려에 나라를 양도하여 삼한이 통일되었다. 석씨는 무력으로 나라를 지켜왔고 김씨는 겸양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전하였으니, 모두 후세에 전할 만하나 동국(東國) 사람들이 박씨를 더욱 사모하게 되는 것은 그 건국한 공로가 심히 커서 인의(仁義)의 덕이 마음속에 깊이 배었기 때문이다. 신라가 지금은 경주부(慶州府)에 부속되었다. 부남(府南, 경주부 남쪽) 7리 되는 곳에 우물이 있으니, 세상에서 말하기를 “시조왕께서.. 더보기 경애왕, 비운의 왕 포석정에서 스러지다 신라 제55대 경애왕(재위 924~927)의 능은 경주시 배동 서남산 삼릉계곡 입구에 있다. 무덤의 겉모습은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원형봉토분으로 주변에 별다른 장식이 없으며 왕릉으로는 작은 규모에 속한다. 경애왕의 성은 박씨, 이름은 위응으로 아버지는 신라 제53대 신덕왕(재위 912~917)이며 어머니는 의성왕후이다. 그리고 신라 제54대 경명왕(재위 917~924)의 동생이다. 경애왕이 왕위에 오르고 4년째 되는 해인 927년 9월에 고려와 싸움을 하던 후백제 견훤은 갑작스럽게 신라의 고울부(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로 쳐들어온다. 이때 왕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구원군을 요청하지만 후백제 견훤의 군대는 같은 해 11월에 고려의 구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서라벌로 쳐 들어가 포석정에서 잔치를 하며 놀고 있.. 더보기 지마이사금, 가야를 공격하고 왜구와 말갈의 침입을 막아내다 신라 제6대 지마이사금(재위 112~134)은 파사이사금의 아들로 왕비는 애례부인 김씨이며 갈문왕 마제의 딸이다. 『삼국사기』에는 태자 시절에 결혼하게 되는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23년간 재위에 있으면서 가야를 공격하고, 왜구와 말갈의 침입을 막았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남산자락에 있는 무덤은 흙을 둥글게 쌓아올린 원형봉토분으로 특별한 장식이 없으며 최근에 설치한 혼유석(영혼이 나와 노니는 곳)이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지마이사금의 재위 기간 동안 유난히 자연재해가 많았음을 볼 수 있는데, 우박과 서리, 홍수와 태풍, 가뭄 그리고 일식, 지진 등이 있었다. 115년, 봄 가야가 침범하자 왕은 직접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황산하(지금의 낙동강 하류)를 지나 가야를 공격하였는데, 가야 ..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다음